마술사

한 남자가 공원에서 공연을 하고 있었다. 검고 긴 모자와 낡고 큰 구두를 신은 찰리 채플린을 닮은 남자였다. 마술사가 모자 속에서 토끼며 비둘기를 꺼낼 때마다 구경꾼들은 아낌없이 박수를 쳤다. 특히 한 아이가 손에 풍선을 쥔 채 넋을 놓고 보고 있었다. 아이의 엄마가 아이에게 속삭였다.

“얘야, 저건 다 눈속임이란다. 세상에 마술 같은 건 없어.”

“진짜요?”

아이의 얼굴에 실망의 빛이 흘렀다. 아이는 그럴 리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젓고 대뜸 마술사에게 물었다.

“아저씨, 정말로 마술은 속임수예요?”

막 모자 속에서 장미꽃을 꺼내던 마술사의 손이 정지화면처럼 굳었다. 사람들의 눈이 아이에게로 쏠렸다. 정적이 흘렀다.

“그렇지 않단다, 얘야.”

불편한 침묵을 깨고 마술사가 간신히 말했다.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세상에 마술 같은 건 없데요.”

마술사가 아이의 엄마를 쳐다보자 여자는 짜증나는 표정으로 시선을 돌렸다.

“세상에 마술은 분명히 존재한단다. 그래서 아저씨 같은 사람이 있잖니.”

마술사는 어색하게 웃으며 아이를 달랬다. 한 손은 모자 속에서 나오다 만 장미꽃 다발을 쥔 상태였다.

“그럼 그 장미꽃을 곰인형으로 바꿔 주세요.”

“뭐라고?”

“곰인형이요. 지금 당장이요. 그러면 믿을게요.”

마술사가 도움을 청하는 듯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그러나 구경꾼들은 아까의 마술보다 이게 더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쿡쿡 웃는 사람도 있었다. 반쯤 벗겨진 마술사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그…… 그건 지금은 곤란하단다.”

“왜요? 인형을 사서 그 긴 모자 속에 미리 넣어 두어야 하나요?”

아이가 실망한 표정으로 말했다. 마술사는 두 손으로 천천히 아이의 양 볼을 감싸 쥐었다. 그리고 온돌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아니란다. 물론 지금 당장이라도 곰인형을 보여줄 수는 있어. 그런데 세상에 진짜 마술이 있다는 게 알려지면 어른들은 어떻게 되겠니? 마술의 힘만 믿고 아무도 성실하게 일하려 하지 않을 거야. 이걸 보렴.”

마술사는 왼손에 있는 동전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주먹을 쥐었다가 펴자, 동전이 사라졌다. 방금 전까지 비어 있던 오른손을 펴자 방금 사라졌던 동전이 나타났다.

“방금 내 왼손에 있던 동전은 ‘정말로’ 사라졌다가 오른손에서 ‘정말로’ 나타났단다. 하지만 그런 건 눈속임으로도 얼마든지 흉내 낼 수 있지. 사실 아저씨는 기다란 모자 따위를 쓰지 않더라도 허공에서 장미꽃을 만들어 낼 수도 있어. 하지만 결코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단다. 그렇게 하면 세상 사람들이 마술이 존재한다는 걸 알아버릴 테니까. 그래서 아저씨는 이런 정도의 마술밖에 보여줄 수 없는 거란다. 진짜 마술이지만 가짜로도 흉내 낼 수 있는 그런 정도의 마술 말이야.”

“그럼 역시 속임수란 말이네요.”

실망한 아이는 엄마의 손을 잡고 돌아섰다. 마술사가 다시 마술쇼를 시작하려 했지만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한 스무 걸음쯤 걸어갔을까. 아이는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혼자 남은 마술사는 아까 그 자세로 엉거주춤 서 있었다. 아이를 본 마술사는 입술 모양으로 쉿! 하는 시늉을 하고 한 쪽 눈을 찡긋했다. 그리고 천천히 모자 속에 들어 있던 손을 빼었다. 마술사의 손에는

커다란, 모자보다도 더 커다란 곰인형이 들려 있었다.

아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이가 엄마를 불러서 마술사가 있던 곳을 가리켰으나 이미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손이 묵직했다. 어느새 아이의 손에는 풍선 대신 곰인형이 들려 있었다. 어리둥절한 아이의 얼굴 위로 작은 그림자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아이는 고개를 들었다. 마술사가 한 손에 풍선을 들고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마술사는 아이에게 손을 흔들며 하늘로 하늘로 올라가더니 이내 작은 점이 되어 사라졌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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